<?xml version="1.0" encoding="utf-8" ?>
<rss version="2.0">
<channel>
<title>교육운동 네트워크</title>
<link>http://www.edumnet.net</link>
<description>아름다운 교육에 대한 꿈과 사례를 소통하는 공간</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at, 22 Nov 2008 08:46:14 +0900</pubDate>
<generator>Wing 1.1 pl3 Phanuel</generator>
<image>
<title>교육운동 네트워크</title>
<url>http://www.edumnet.net/cache/logo/top_white_small.jpg</url>
<width>973</width>
<height>174</height>
<description />
</image>
<item>
<title>멈출 수 없는 본능, 그것은 바로</title>
<link>http://kixzero.egloos.com/3988513</link>
<description>요즘 좀 책을 많이 읽는다.&lt;br&gt;한동안 안 하던 블로깅도 다시 한다.&lt;br&gt;심지어 친구들과도 줄줄이 약속 투성이다.&lt;br&gt;&lt;br&gt;아마도 이건&lt;br&gt;&lt;br&gt;&lt;br&gt;&lt;br&gt;12월 7일 JLPT 시험을 치기 때문일 것이다.&lt;br&gt;&lt;br&gt;딴짓본능. 아아아 -_-;;;</description>
<category />
<author>은하</author>
<guid>http://kixzero.egloos.com/3988513</guid>
<pubDate>Sat, 22 Nov 2008 00:30:44 +0900</pubDate>
<source url="http://kixzero.egloos.com" ><![CDATA[ 꺾이지 않는 펜 ]]></source>
</item>
<item>
<title>나는 GOOD 100% 사나이라고 생각했거늘</title>
<link>http://newidea.egloos.com/1158383</link>
<description>이글루가 나를 악의 길로 이끌고 있어
성향테스트 하는곳




뭐 中用도 좋은거니 ... 내 블로그는 악마가 약간 강하군..</description>
<category />
<category> 블로그</category>
<category> 성향</category>
<author>착선</author>
<guid>http://newidea.egloos.com/1158383</guid>
<pubDate>Fri, 21 Nov 2008 20:35:30 +0900</pubDate>
<source url="http://newidea.egloos.com" ><![CDATA[ 착선의 변증법 ]]></source>
</item>
<item>
<title>[퍼옴]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부정변증법</title>
<link>http://jaak.egloos.com/2182510</link>
<description>&lt;p class=&quot;바탕글&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4pt&quot;&gt;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lt;br&gt;절박한 과제로서 전문성 신장&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먼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절박한 이유부터 짚어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아무리 아니라 우겨도 교사의 대우가 평균을 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과잉보상이라는 견해가 사회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교사보다도 대우가 좋은 교수나 의사를 부러워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일들을 “당장 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웬만한 교육을 받은 성인들은 교사 정도의 일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 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 교사를 곱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교사의 이미지는 무능한데도 평균이상의 월급을 받고 노동자들의 절반만 일하는 집단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사가 지금 같은 대우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분한 대우를 포기하던가 아니면 그만한 대우를 받을만한 합당한 자격이 있음을, 아니 더 좋은 대우를 받아도 모자람을 당당히 선언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전문성을 신장하고 이를 내어 보임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교사의 전문성은 단지 전공 지식이나 교육학에 기능적으로 숙달되는 것 이상의 것이라야 합니다. 이는 무수한 지식의 네트워크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적합한 교육방법을 선택, 구상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새로운 지식과 방법을 생산자로 설 수 있게 이끌 수 있는 그런 능력입니다. 이러한 전문성은 당연히 오랜 연구와 교실에서의 실천경험이 필요하며, 일반인은 물론 전문 연구자도 쉽게 넘볼 수 없는 능력입니다. 교육의 이러한 전문성을 끈질기게 연마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드러낼 때 우리에게 가해오는 부당한 압력과 비난은 중단될 것입니다.&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전문성을 신장하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마냥 교사들의 안일과 나태로만 몰아세울 수는 없습니다. 부지런하고 의욕적인 교사들마저 중년기가 되면서 지치고 냉소적이 되면서 안일과 나태의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여러 구조적 장벽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장벽들은 교사 집단 바깥에서 형성된 사회적, 제도적 장벽일수도 있고 교사집단 내부에 형성된 문화적, 관습적 장벽일수도 있습니다. 간단하게나마 이런 장벽들을 한 번 짚어봅시다. &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외부의 장벽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부족한 기자재&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청진기 하나 쥐어주고 암을 치료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사의 전문성 역시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제약을 받습니다. 교실에 빔프로젝터가 있고 없고에 따라 수업을 구상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면, 냉방시설이 있는 교실과 없는 교실의 수업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교의 실태는 비참합니다. 시설은 낡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경직되고 비대한 관료제로 인해 업그레이드도 매우 더디며, 학교간 편차도 심합니다. 학교의 각종 시설환경은 흡사 ‘타임캡슐’을 연상시킵니다. 그나마 신형의 시설과 기자재가 공급되어도 설치되는 그 순간부터 활용보다 분실·파손 방지, 관리 철저 등등의 잡무가 되어버립니다.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시설과 장비는 고장이 나고 파손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런 정상적인 생각을 갖추기에는 학교관리자라는 지위가 너무 비정상적입니다.&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전문성 신장에 적대적인 공간&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교사들의 공간적 환경은 전문성 신장에 최악이며 적대적입니다. 교무실 배치를 보면 최소한의 공간을 사용하여 최대한의 교사를 몰아넣으려는 목적 외에는 없어 보입니다. 이런 공간에서는 연구도 휴식도 불가능하며 그나마 비좁은 공간을 컴퓨터가 차지한 다음부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행정사무 아니면 인터넷 쇼핑뿐입니다. 초등 교사들은 교실을 연구실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궁여지책에 불과합니다. 개별 연구실이 어렵더라도 교사전용 도서실, 세미나실 등만 있어도 교사문화가 전문성에 친화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공간이 설치되어 있는 학교가 있긴 하지만 이 경우도 활용보다는 관리에만 신경 쓰느라 잠겨있기 일수입니다.&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유인동기 부족&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전문성 신장을 교사 개개인의 열정과 윤리에만 맡겨두는 것은 낭만적 생각입니다. 전문성 신장은 노고와 비용을 요구하며, 유인동기가 없다면 일부 열정적 교사들을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는 전문성을 신장해도 별 이득이 없고, 하지 않아도 별 손해가 없는 체제입니다. 전문성 신장의 유인동기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전문성은 승진에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성 신장이 경제적 보상, 명예, 승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소수의 특별한 교사를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전문성 신장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나마 교육당국이 제공하는 얼마 안 되는 전문성 유인 동기는 주로 부정적 보상에 의존하려 들거나 쥐꼬리만한 혜택을 주면서 그것을 빌미로 산더미 같은 간섭을 하려들어 교사의 자존심을 손상시킵니다. &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행정사무와 낡은 관행&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교사가 행정사무까지 보는 것은 교사의 전문성 뿐 아니라 행정직원들의 전문성도 손상시키는 최악의 조합입니다. 사실 교사 전문성 신장의 첫 걸음은 행정사무를 하지 않는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것은 행정 비전문가인 교사가 각종 행정사무를 적당히 나눠가지는 것은 행정직원에게도 모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행정업무를 행정직원이 전담하게 되면 비로소 그들은 쓸데 없는 불합리한 잡무를 분석하고 이를 간소화, 합리화 하려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즉 행정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교사는 교실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지금까지 행정 잡무는 무능한 교사들의 도피처였습니다. 아무리 엉터리로 수업을 해도 공문서 몇 장 처리하면 용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정 잡무가 사라지면 무능한 교사가 도피할 영역이 없기 때문에 도리 없이 교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남성의 지배의 문화&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교사들의 대다수가 여성입니다. 따라서 젠더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는 교사문제를 다룰 수 없습니다. 많은 여교사들이 교사와 주부라는 2중 지위를 가집니다. 그런데 주부라는 지위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남는 시간에 각종 가정유지 노동을 해야 합니다. 부부교사가 아닌 경우 여교사가 배우자에게 동등한 가사노동을 요구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교사의 배우자들이 대체로 여론주도층이라는 점이 더욱 문제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여교사들은 대기업에 다니는, 혹은 전문직인 배우자 앞에서 자신의 일이 그들이 하는 일 보다 더 어렵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사 하느라 아이에게 신경을 못 써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여교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인 전문직 남성들은 직장에서 두고 온 자녀에게 미안해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 결과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직종은 열정과 패기로 전념하는 이미지가 형성되고,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교사는 주부가 적당히 겸직해도 되는 정도의 일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실로 무서운 이미지입니다. 이 마음속의 불평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전문성 신장의 장벽은 가정에서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xml:namespace prefix = o ns = &quot;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quot; /&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내 안의 장벽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지금까지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을 살펴보면 제도적이거나 문화적인 것이라 교사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 것 처럼 착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실상 외부의 장벽 못지않게 교사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전문성 신장의 장벽도 만만치 않습니다. &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자유를 번거로워하는 타성&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주로 중년층 이상의 교사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된 이유입니다. 사실 전문직은 자율성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위해 치뤄야 할 책무성이란 비용을 요구합니다. 사실 수업을 스스로 구상해서 실시하는 것은 매우 고들픈 일입니다. 그냥 정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수업이 훨씬 노고가 덜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정해진 수업만 하고 남는 시간을 여흥과 쇼핑으로 탕진하는 교사들의 수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안락함은 자율성을 포기한 댓가, 즉 노예의 안락함입니다. 물론 교사를 부러워하는 시선이 전문성보다 노예의 안락함에 끌렸기 때문인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젊은이들 중에는 이 노예의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교사가 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교사에 대한 좋은 대우는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과도기에 불과합니다. 노예의 안락함에 안주하고 있는 교사에게 지금과 같은 대우를 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입니다. 하루에 4~5시간 정도만 노동하고, 1년의 1/3이 휴가인 이유는 남는 시간동안 전문성을 신장하라는 것이지 놀거나 쉬라는 것이 아닙니다. 1999년 캐나다 교원노조의 투쟁 슬로건이 “하루 1시간의 공강시간 확보!”였음을, 레이건 시절 미국 교사들이 하루 45분의 비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루에 2~3시간씩 남는 시간을 의미없는 웹서핑, 싸이질, 수다 등으로 탕진해도 되는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가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지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교육학 소비자주의&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교육학은 이미 완결된 매뉴얼이 아니라 구체적인 교육을 통해 수정, 보완, 발전되어야 하는 일련의 실천입니다. 따라서 교육학과 수업은 구별되지 않으며, 교육학자와 교사도 구별되지 않습니다. 교실은 단지 교육학이 적용되는 공간이 아니라 생성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이 교육학을 배우고 익혀야 할 완성된 교수-학습 패키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교사들조차 교육학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머물러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창조적으로 변화, 발전시키기 보다 기계적으로 적용한 뒤 “역시 한국 현실에는 이런 수업이 안 돼.”라며 지레 포기해버리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젊어서는 다양한 교수-학습을 시도해 보다가 나이 들어갈수록 단순 강의형에 안주해 버리는 불행한 루틴이 반복됩니다. 그러면서 학교 현장을 모르는 교육학자들의 탁상공론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을 아는 교육학자가 달리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교사 외에 누가 학교 현장을 알겠습니까? 그러니 교사가 교육학의 소비자인지 생산자인지의 답은 분명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행복관의 부재&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이런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이 옳다고 치자. 하지만 난 수업 대충 하고, 월급이나 받고, 남는 시간을 쇼핑하고, 친구만나 수다 떨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 무엇 때문에 아무 보상도 없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단 말인가?” 물론 이는 매우 영리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삶의 태도에서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모두가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실현할 때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타고난 본성보다는 외부에서 강요된 기준에 따르도록 강요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교사인 우리 역시 잘못된 교육의 희생자입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행복은 결과를 얻으면 얻을수록 새로운 욕망을 생산하는 허무한 행복입니다. 만약 미결정적 주체인 아동들이 타고난 본성을 실현하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는 행복에 공감하는 그 아름다운 경험을 한 번이라도 겪는다면, 우리는 저 허무한 행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프뢰벨은 아동의 교육은 잘못된 교육을 받은 어른이 자신을 고칠 수 있는 치유라고 말했던 것입니다.&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quot;&gt;원자화 경향&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최근 성실하고 진취적인 젊은 교사들일수록 자주 토로하는 고민이 너무 일이 많고, 힘들고, 바쁘다고 합니다. 수업 준비하는 것도 벅차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산더미처럼 보이고, 면담은 또 어찌해야 할지 깜깜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하는 교사들의 공통점은 이 모든 것을 홀로 한다는 것입니다. 홀로 자료 준비하고, 홀로 면담 준비하고, 홀로 업무를 처리합니다. 동료나 선배는 단지 고충을 토로하고 동정심이나 공감을 얻어내는 대상일 뿐, 함께 공부하고, 함께 준비하는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식은 소통과 공유를 통해 생성되지 결코 고독한 은둔을 통해 형성되지 않습니다. 안다는 것은 행함이며 행함은 곧 말하는 것이고, 말함은 곧 공동으로 행함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혼자 밤을 새지 말고 스승에게 말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최근 교사들의 원자화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전교조 역시 과거와 같은 공동의 실천단위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교조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체할만한 새로운 실천단위가 나온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공동의 실천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개체화된 인간은 아렌트의 말을 빌리면 모두 “잠재적인 나찌”입니다. 우리는 나찌들에게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전문성의 새로운 정립을 위하여&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지금까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 장벽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그 동안 전문성이라고 하면 막스 베버가 말한 “차갑고 영혼 없는 전문가”의 속성을 떠올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전문성은 차라리 듀이가 말한 “자유로운 연구자들의 공동체”의 속성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정해진 매뉴얼에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의 애정과 창의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사의 전문성 신장은 교사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의 새로운 의미 정립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lt;/p&gt;</description>
<category />
<author>온달샘</author>
<guid>http://jaak.egloos.com/2182510</guid>
<pubDate>Fri, 21 Nov 2008 19:51:02 +0900</pubDate>
<source url="http://jaak.egloos.com" ><![CDATA[ B I O P H I L I A ]]></source>
</item>
<item>
<title>은평뉴타운과 생태보존에 대한 짧은 생각</title>
<link>http://byway69.tistory.com/entry/은평뉴타운과-생태보존에-대한-짧은-생각</link>
<description>얼마 전 은평뉴타운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lt;br /&gt;
뉴타운이라고 해서 도심재개발을 생각했었는데,&amp;nbsp;완전히 신도시 개발이더군요.&lt;br /&gt;
겉모습만 봐서는 성냥갑식 획일적인 디자인을 탈피하려고 했고, 군데군데 생태적(?)인 공간도 배치해서 서울시가 자랑하고 싶어할만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lt;br /&gt;
그러나 오랜 세월 자연적으로 생성되고 유지돼 왔던 생태공간을 완전히 갈아엎어버리고 그 자리에 다시 짓는 인공적인 생태공간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참 난감하더군요.&lt;br /&gt;
수십년 이상 유지해온 지역공동체도 다 흩어버리고 몇 억짜리 균질한 아파트에 비슷한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로 싹 물갈이하는 지역개발도 마찬가지고요.&lt;br /&gt;
&lt;br /&gt;뉴타운 사업구역에 들어서니 공사장을 바라보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할머니 두 분이 보입니다.&lt;br /&gt;
저 분들은 저 거대한 공사장을 어떤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lt;br /&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5.tistory.com/image/20/tistory/2008/11/21/16/28/492663300cf76&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unpyong07.JPG&quot; height=&quot;412&quot; width=&quot;620&quot;/&gt;&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5.tistory.com/image/27/tistory/2008/11/21/16/28/4926633030daa&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unpyong08.JPG&quot; height=&quot;412&quot; width=&quot;620&quot;/&gt;&lt;/div&gt;&lt;br /&gt;
여기는 진관사 입구쪽인데... 고급주택들이 들어설 자리랍니다. 맹꽁이 서식처를 깔아뭉개고 들어서는 고급주택에는 저 좋은 풍광을 독점하려는 귀족들이 살게 되겠지요. 이제 경관마저도 소수에게 독점되는 공간의 불평등을 겪게 되었군요.&lt;br /&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5.tistory.com/image/19/tistory/2008/11/21/16/28/4926633090cca&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unpyong09.JPG&quot; height=&quot;412&quot; width=&quot;620&quot;/&gt;&lt;/div&gt;&lt;br /&gt;
나름대로는 저층으로 아름다운 주거단지를 짓는다지만, 원래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경관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lt;br /&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5.tistory.com/image/19/tistory/2008/11/21/16/28/49266330deec4&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unpyong10.JPG&quot; height=&quot;412&quot; width=&quot;620&quot;/&gt;&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5.tistory.com/image/31/tistory/2008/11/21/16/28/4926633139e1d&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unpyong11.JPG&quot; height=&quot;412&quot; width=&quot;620&quot;/&gt;&lt;/div&gt;&lt;br /&gt;
지역의 시민단체와 환경단체의 저항으로 지켜낸 습지입니다만, 원래의 자리에서는 한 참 옮겨졌습니다. 시공사 입장에서는&amp;nbsp;그냥 묻어버리고 싶었을 눈엣가시였겠지만,&amp;nbsp;지금은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입니다.&lt;br /&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5.tistory.com/image/18/tistory/2008/11/21/16/28/4926633182a27&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unpyong12.JPG&quot; height=&quot;412&quot; width=&quot;620&quot;/&gt;&lt;/div&gt;&lt;br /&gt;
습지를 들여다보며 반영샷 흉내도 내 봅니다. ^^;&lt;br /&gt;
제 처지에 저런&amp;nbsp;고급주택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물그림자일 뿐이네요.&amp;nbsp;-_-;&lt;br /&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5.tistory.com/image/28/tistory/2008/11/21/16/28/49266331e5cb2&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unpyong13.JPG&quot; height=&quot;412&quot; width=&quot;620&quot;/&gt;&lt;/div&gt;&lt;br /&gt;
뉴타운이든 재개발이든 존재하는 소중한 것들을&amp;nbsp;지키는 사업이 될 수는 없을까요?&amp;nbsp;</description>
<category>세상사궁시렁궁시렁</category>
<category> 은평뉴타운</category>
<author>샛길</author>
<guid>http://byway69.tistory.com/entry/은평뉴타운과-생태보존에-대한-짧은-생각</guid>
<pubDate>Fri, 21 Nov 2008 16:56:21 +0900</pubDate>
<source url="http://byway69.tistory.com/" ><![CDATA[ 샛길의 일상 ]]></source>
</item>
<item>
<title>영어만 잘 한다고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title>
<link>http://explain.egloos.com/3987918</link>
<description>&lt;a title=&quot;&quot; href=&quot;http://explain.egloos.com/3921942&quot;&gt;원어민 교사와 영어전용교사&lt;/a&gt;&lt;br&gt;&lt;br&gt;교육과학기술부가 2010년부터 최대 4천 명의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일선 초등학교에 배치한다고 한다(&lt;a href=&quot;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323072.html&quot;&gt;관련 기사&lt;/a&gt;).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 내놓았던 '영어전용교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만 명칭을 '교사'에서 '강사'로 바꿨을 뿐이다. 문제는 이 많은 인력을 배치하면서 '강사'로서의 '질'을 보장할 수 있겠느냐는 것인데, 아무래도 회의감부터 든다. 도입방안을 살펴보면 2안과 3안은 교원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은 이도 강사로 뽑을 수 있는 자격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자격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amp;nbsp;이미 일선 교육청의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원어민 교사 관리 실태에서 드러났듯이 그냥 영어만 할 줄 안다고 교사나 강사로 뽑는다면 뒷날 꼭 문제가 될 것이다.</description>
<category />
<category> 영어회화강사</category>
<category> 영어몰입교육</category>
<author>解明</author>
<guid>http://explain.egloos.com/3987918</guid>
<pubDate>Fri, 21 Nov 2008 13:39:35 +0900</pubDate>
<source url="http://explain.egloos.com" ><![CDATA[ 解明의 수사학 ]]></source>
</item>
<item>
<title>폴 크루그만과 삼성경제 연구소 - 국제유가 50달러</title>
<link>http://blog.daum.net/leesc314/5522334</link>
<description>'한국 경제가 사라진다'라는 책이 있었다. 2004년 출간되었는데 어제 다시 읽어보고 놀랐다. 오늘의 사태에 대한 '원인'을 외환위기에 연결시켜 너무도 꼼꼼히 잘 분석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글쓴이 대부분이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이라는 사실이었다.......</description>
<category />
<author>사띠현정</author>
<guid>http://blog.daum.net/leesc314/5522334</guid>
<pubDate>Fri, 21 Nov 2008 11:33:49 +0900</pubDate>
<source url="http://blog.daum.net/leesc314" ><![CDATA[ 생태와 경제 ]]></source>
</item>
<item>
<title>10년전에 썼던 아주 긴 교단 일기</title>
<link>http://hagi87.egloos.com/1053867</link>
<description>&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10년전 너무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심란해서 기나긴 일기 비슷한 글을 썼었나 봅니다. 컴퓨터 하드를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글인데, 느낀바가 있어 블로그에 올려봅니다.&lt;br&gt;&lt;/span&gt;&lt;br&gt;&lt;br&gt;말 그대로 수필-마구 붓 가는 대로, 나의 실존, 내면세계의 무제한 표출&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amp;nbsp; &lt;?xml:namespace prefix = o ns = &quot;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quot; /&gt;&lt;o:p&gt;&lt;/o:p&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갑자기 고등학교 때 일이 생각난다. 벌써 13년이나 지난 옛날이다. 아직까지도 악몽 속에서 떠오르는 나의 고3시절.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재미있게 보내 잊어지지 않는 고3 시절. 너무 재미있었다고? 역설적이지만&amp;nbsp;그 시절 만큼은 예민한 수험생이라는 미명하에 부모의 간섭과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웠던 것이다. 어떤 어른도 고3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고3때 청소년기 최대의 자유를 누렸던 것이다. 물론 모의고사 성적표 나오는 날만큼은 집요한 잔소리에 시달려야 했지만,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하면 되는 일이었으니 공부줄을 아주 놓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lt;br&gt;&lt;br&gt;고3이 밤 늦게 집에 들어온다고, 일요일이나 방학때 가방 싸들고 불쑥 나간다고&amp;nbsp;누가 뭐라 하겠는가? 난 이 자유를 참으로 다양하게 즐겼다. 그 중에서도 영화가 가장 많은 자유시간을 할당받았다.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난 그때도 영화 보는 것을 무척 즐겼던 것 같다. 지금은 모두 없어졌지만 당시 유일한 강남 개봉관이었던 동아극장과&amp;nbsp;작은 극장의 정취를 잘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아했던 빨간 지붕의 양옥집 시네 하우스를 내 집 처럼 드나들면서, 고3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를 보아대었으니 말이다.&amp;nbsp;물론 집에 들어가면 공부하느라고 늦게 들어왔다고 뻥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부터 고3학력고사 직전까지 인상 깊은 영화를 제법 많이 보았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초롱초롱한 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재미에 푹 빠져 -영화 자체는 별로였다. 음악 듣는 것이 즐거웠을 뿐- 2시간40분의 러닝타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던 &amp;lt;아마데우스&amp;gt;다. 워낙 긴 영화라 하루에 4회 밖에 상영 하지 않았는데, 아침 11시에 학교 땡땡이 치고 가서 4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 앉아서, 대사들을 완전히 외울 때까지 보고 또 보고하는 짓을 서너 번이나 했다. 그렇다면 한 12번 이상 본 셈일까?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자막을 전혀 보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놀라던 모습이 생생하다. &lt;br&gt;&lt;br&gt;그 외에 브라이언 드팔마의 &amp;lt;스카페이스&amp;gt;, 이장호의 &amp;lt;외인구단&amp;gt;-이건 영화가 잘 되어서라기보다는 담임한테 꾀병을 부려 조퇴 허가를 받은 뒤, 피카디리 극장으로 낼름 달려갔던 기억이 나를 더욱 웃음 짓게 한다.-, 제임스 카메룬의 &amp;lt;에일리언2&amp;gt;, 이장호의 &amp;lt;어우동&amp;gt;-이놈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고삐리 티를 감추기 위한 온갖 위장술을 총 동원 했었고, 마침내 단성사에 침입하는데 성공했었다. 내가 여자의 젓꼭지가 나오는 영화를 본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비슷한 부류로는 &amp;lt;레이디 인 블랙&amp;gt;이란 영화와 &amp;lt;나인하프 위크&amp;gt;가 있었는데, 어우동 잠입 때의 노하우를 십분 살려서 아무런 망설임과 두려움 없이 당당히 가서 보았고, 불행히도 &amp;lt;개인교수&amp;gt;는 도중에 잡혀서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amp;lt;대부&amp;gt; 등등이 기억에 아직까지도 생생한 영화들이다. &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 외 내가 고2와 고3 사이 영화관에 가서 봤던 영화들을 생각나는 대로 들어봐라 한다면 &amp;lt;베벌리 힐스 캅&amp;gt;. &amp;lt;산딸기2&amp;gt;, &amp;lt;매드맥스&amp;gt;, &amp;lt;나이트메어&amp;gt;, &amp;lt;버닝&amp;gt;, &amp;lt;라이어스 문&amp;gt;, &amp;lt;복성고조&amp;gt;, &amp;lt;귀타귀&amp;gt;, &amp;lt;바람과 함께 사라지다&amp;gt;, &amp;lt;테스&amp;gt;, &amp;lt;샤키스 머신&amp;gt;, &amp;lt;캣피플&amp;gt;, &amp;lt;터미네이터&amp;gt;, &amp;lt;에프 엑스&amp;gt;, &amp;lt;어비스&amp;gt;, &amp;lt;투씨&amp;gt; 등등등 수도 없이 많다.&lt;br&gt;&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러고 보면 어린 녀석이 참 별별 것을 다 봤구나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비디오조차&amp;nbsp;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10대 소년들의 솟구치는 성적 호기심을 어디에서 해결할 수 있었겠는가? 극장으로 가는 수 밖에. 그래도 그게 실습을 통해 해결하는 것보다는 더 건전한 것 아닐까? 그때 우리 반에는 실습을 너무 과하게 해서 임질에 걸린 녀석도 있었는데, 우리는 그 녀석을 썩은 바나나라고 놀려대곤 했었다. 그러니 나는 그 녀석에 비하면 아주 건전한 사춘기를 보낸 셈이었다.&lt;br&gt;&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런데 영화 때문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그 다음에 있었던 지금도 나 스스로를 한심하게 느끼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고등학교 3학년 1학기가 끝나가던 6월 무렵 명동에서 있었던 너무도 바보 같았던 사건이다. 그때 나는 내 옆에 앉던 녀석이랑 같이(그녀석은 차**라는 녀석인데, 우리는 마치 동성애라도 하는양 붙어 다녔고, 온갖 시시 껍절한 헌팅 따위의 여학생 사냥이나 하고 다녔는데, 그 녀석의 예쁜 용모와 나의 유창한 언변으로 거의 환상의 콤비를 이루었었다) 중앙극장에 &amp;lt;실버라도&amp;gt;라는 시시한 서부영화를 보러 갔었다(그때 등장했던 시시해 보이던 케빈 코스트너란 놈과 케빈 클라인이란 놈이 요즘처럼 대 스타가 될줄은 그땐 정말 몰랐다). &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좌우간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외환은행 본점 앞에 있던 웬디스를 향했다. 지금은 패스트푸드가 싸구려 취급을 받지만, 그때는 미국물 먹은건 뭐든지 고급으로 취급되던 시절이라 엉뚱하게도 패스트푸드가 매우 고급스러운 곳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웬디스는 배짱 튀기며 고가 정책을 고수하던-지금은 그러다가 맥도날드한테 밀려서 퇴출되었지만- 그런 곳이었다. 웬디스와 롯데리아는 품격이 달랐다고나 할까?&amp;nbsp; 당시 웬디스에서 팔던 치즈와 새우가 들어가는 딜럭스 햄버거 값이 하나에 800원, 햄버거랑 같이&amp;nbsp;마시는 셰이크 종류의 음료가 한 잔에 700원이었다. 당시 버스요금이 100원, 자장면 한 그릇이 600원이었음을 감안해 보라. 정말 장난 아니게 비싼 패스트푸드였던 것이다. 요즘 물가로 계산하면 7000원 짜리 햄버거에 6000원짜리 밀크셰이크 정도 되는 셈이다. 이건 거의 호텔 라운지 수준의 값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어쨌든 나와 그 친구, 그리고 다른 일 보러왔다가 합류한 몇몇 녀석들이 뭉쳐서 맛나게 햄버거를 먹었다. 그런데, 문득 주문 받는 아르바이트 학생이 너무 예쁘게 생겼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되었다. “야. 저기 주문 받는 누나 정말 이쁘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외쳤고, 곧 이어서 “그런데 목소리는 더 이쁘다. 진짜 환상이다.” 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웬디스를 떠날 생각을 못한 체 계속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세이크를 일부러 천천히 빨아 먹으며 멍하니 그 누나만 바라보게 되었다. &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런데, 아쉽게도 뻑뻑하기로 유명한 웬디스의 셰이크(그 밀도가 롯데리아의 세배쯤은 되었지 싶다)가&amp;nbsp;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예쁜 아가씨를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그리고 그 예쁜 목소리를 가까이서 다시 들어보기 위해 카운터로 달려갔다. 그리고 갈 때 마다 포테이토 칲, 오렌지 주스, 딸기 주스, 다시 초코 셰이크, 딸기 셰이크 등등, 좌우지간 뭐든 시켜서 다 먹으면 다시 가서 또 시키고, 다 먹으면 다시 가서 또 시키기를 반복했다. 그 짓거리는 온갖 종류의 주스와 음료수로 배가 가득 차서 거의 걸음을 걷기가 힘들다고 느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amp;nbsp;혈기 왕성한 10대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리라. 지금 생각하면 너무 한심해서 웃음 밖에 안 나온다.&amp;nbsp;방탕하고 돈 아까운줄 모르는 학생들이라고 욕하지 않기를 바란다.&amp;nbsp; 당시 나와 내 친구들에게는 그런 생활이 자연스러웠기&amp;nbsp;때문이다. 소위 강남 촌놈이었던 나는 그때까지 다른 세상에 대해서 거의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여자 목소리 듣기 위해 돈 퍼부은 그 짓거리는 그냥 그런 나의 일상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혹은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 치고 세종문화회관으로 달려가서 음악회를 본다거나, 만약 음악회가 없으면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커틀렛이나 함부르크 스테이크를 먹는다거나 하는 따위의 일들이 그랬다. 고등학생이 말이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내 친구이자, 유명한 윤리학자 진 아무개&amp;nbsp;교수의 아들이도 했던 성은 그런 나를 볼 때마다, “그 아까운 예술 혼을 타락한 생활로 다 날려 버린다” ’라고 하며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제 녀석도 말만 그랬지 돈 쓰는 레벨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초콜렛을 무척 좋아했던 그 녀석은 그 점에 있어서는 나와 거의 입맛이 같았는데, 우리는 걸핏하면 야자를 땡땡이 치고 개포동에 있던 한신 코아로 달려가서 초코렛 한 더즈들이 상자를 사곤 했다. 그리고 그것을 여섯 개씩 나눠 가진 뒤, 그 여섯 개 초콜릿의 껍질을 벗겨서 한꺼번에 포개 한입에 쑤셔 넣고 우걱우걱 먹어대곤 했다. 입안에 가득 차는 초콜릿의 끈적거림은 정말 일품이었다. 그리고 가나 초코렛, 슈샤드 초코렛, 크런치 등이 지겨워지면, 그랑프리 백화점에 있는 콜롬방이라는 제과점에 가서 죽처럼 걸죽한 초코렛을 국자로 퍼먹곤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엄청난 호사였다. 성은 이미 세상을 떠난 녀석이지만 불러서 한마디 하고 싶다. 그건 방탕하고 사치한 것 아니었나?&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amp;nbsp; &lt;o:p&gt;&lt;/o:p&gt;&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하지만 그 녀석의 비난은 내가 대학 시절 겪어야 했던 광풍에 비하면 매우 사소한 것이었다. 대학 4년 내내 나는 우리 집이 부유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했고, 심지어는 저주해야 했다. 내가 배 불리 먹고, 넉넉하게 살고, 그리고 여유 있게 국립대학을 다닐 수 있는 것은 천만 노동자의 피눈물 나는 희생과 억압 덕분이라는 그 무거운 부채의식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녀보지 않은 사람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이라면 아주 손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하지만 나는 나름 다른 강남 녀석들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자본주의의 뻔뻔한 수혜자가 아니라, 민중을 위해 스스로의 기득권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는 전투적인 지식인이자 노동계급의 전위투사로 여겼다. 그래서 그 한심한 짓을 함께 공유했던 고등학교나 중학교 동창들과도 거의 만나지 않았고, 연락을 끊었다. 친척들, 특히 부유한 외가쪽 친척들을 노동계급의 적으로 간주하고 연락을 끊었다.&amp;nbsp;이상하게 들리겠지만,&amp;nbsp;그 시절은 대학생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서로 가난해 보이려고 애썼던 시절이다.&amp;nbsp; “세련되었다.”라는 말이 결코 칭찬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강남출신이라는 것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나에게는 일종 의 원죄와 같은 것이었고, 그 원죄를 씻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곱절, 몇 곱절 더 헌신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무거운 원죄의식, 나 뿐 아니라 거의 모든 거시기 국립대학생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수많은 원죄의식들은 세월이 가고,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그 탄생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잊혀져 갔다. 나는 스스로를 6월의 아들이라 부르며, 내가 아스팔트위에 뿌린 청춘의 시간들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지만, 어쨌든 그건 그냥 지나가 버린 이야기이며, 한 때의 무용담이었을 뿐이었다.&lt;br&gt;&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런데, 그렇게 잊혀져간 그 시절의 그 기억들, 그 원죄의식이 다시 살아나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웬디스에서 벌였던 그 치기어린 짓거리가 1997년, 당시만 해도 무척 가난한 지역이었던 암사동에 있는 한 중학교에 부임하면서부터 결코 웃어넘길 추억만으로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1996년까지 강남구의 도곡 중학교에서 근무하면서&amp;nbsp;피자를 사주고 베니간스에서&amp;nbsp;식사를 사 주어도 아무 감동없이 너무도 당연하게&amp;nbsp;덤덤하게 받아먹던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떡볶이 500원어치에 한없이 감동하는 아이들과 함께 분식집에서 만두와 순대를 먹는 상황에 처하자 그놈의 원죄의식이 다시 솟구쳤던 것이다. 이제는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이제는 거의 잊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원죄의식은 점점 생생하게 되살아나며 나를&amp;nbsp;밤새 뒤척이게 만들었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사실 나는 대학교 때 치열하게 싸우고 고생했던 것으로 원죄를 충분히 대속 했다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떳떳했었다. 그래서 도곡 중학교에 발령이 났을 때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 속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릉역과 역삼역 사이에 자리 잡은 그 동네는 지하철 3호선의 종점이 양재에서 수서로 바뀌었다는 것 빼고는 내가 학교 다닐 때의 모습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교복이 생겼다는 것을 빼면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아이들은 얼굴을 보면 그 즉시, 저놈은 내 어린 시절이군, 아 저놈은 내 친구 진수의 어린 시절 같고 하며 손쉽게 친근감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나의 갸냘픈 향수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마치 나의 어린 시절 같은 그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이물질처럼 끼어있던 대학 4년, 아니 5년간의 기억에서, 그 아픔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얼마나 행복했던가? 거칠고 교양 없고, 오직 바라는 건 엄마들의 돈 봉투뿐인 선생들, 아니면 “나는 도덕적이야, 나는 깨끗해.” 라고 하면서 은근히 강남 아이들의 좋은 가정환경을 시샘하고, 그 시샘과 열등감을 “이 동네 아이들은 도대체가 선생을 우습게 알고, 지만 아는 이기주의자들이야! 여기에서 무슨 교육을 해? 난 가난한 동네로 갈거야!”라는 말속에 풀어내는 촌스러운 선생들 속에서 부대끼던 아이들에게 나는 선생이자, 동네 오빠였으며, 그리고 향토의 선배이자 자신들의 미래 모습이었으며, 혹은 흉내 내고 싶은 하나의 모델이었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아이들 눈에는 얼마나 멋지게 보였겠는가? 좋은 집안에 명문대 출신으로 방송국이란 직장도 마다하고서 백묵을 잡은, 젊고 전혀 구질구질하거나 꾀죄죄하지 않은 선생님. 컴퓨터 게임도 할 줄 알고, 시끄러운 메탈 사운드도 즐기고, 아이들의 문화도 이해하고 즐길 줄 아는 선생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거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것 역시 내가 노력한 결과였다. 교재연구만 하면 선생의 준비가 다 끝난 것인가? 천만의 말씀! 자신을 문화적으로, 심지어는 스타일로도 만들어야 한다.&lt;br&gt;&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어쩌면 나는 그 5년간을 가장 솔직한 나의 참 모습 속에서 살았는지 모른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엘리트 코스를 계속 밟아온, 생활에 부대끼지 않고, 여유있게, 정말 가르치는게 재미있어서 가르치는 신선놀음하는 선생. 온갖 문화생활을 자유롭게 누리며, 교사의 봉급을 전혀 박봉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며, 도대체가 미래의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는 그런 부드러운 교사. 그곳에서 근무했던 것이 나의 불행이었는지 모른다. 나를 계속해서 온상 속의 화초로 머물게 만드는. &lt;br&gt;&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러나 나는 너무 솔직하다. 그래서 “잘 사는 애들은 더 이상 돌볼 필요가 없잖아? 그래서 나는 어려운 아이들이 사는 가난한 동네로 가서 참 교사의 보람을 찾겠어!”라고 감히 말하지 않는다. 솔직히 그런 용기도 나지 않고, 진짜 어렵고 거친 그런 아이들을 다루고 힘이 되어줄 자신도 없다. 내가 그들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면서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건 촌 출신 선생들이 강남 아이들 앞에서 사정없이 헤매고 상처받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강남 애들 앞에서 병신 되는 건 “부잣집 애들이라 싸가지 없다.”라는 말로 합리화가 되고, 가난한 아이들 앞에서 헤매는 건 교사의 기본적인 양식이 부족한 것으로 은근히 말이 흘러가는 이 웃기는 현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도곡 중학교에서의 5년을 행복하게 보냈다. 상상과는 너무도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 당황하는 전남 영암 출신 교사에게 조언도 해 주고 하면서, 학교에서 가장 힘들다는 학생부 교내지도계를 계속 하면서도 말이다.&lt;br&gt;&lt;br&gt;&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런데, 우리 집의 주소가 송파구라는 이유로 강남에서 나가게 되었다. 마침 도곡에서 정을 끊으라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강남의 교사진은 점점 고령화 되었고, 돈 뜯어 먹는데 귀신인, 아부하는데 귀신인, 정말 그 아이들 가르치기엔 너무너무 턱없이 모자란, 그래서 강남 아이들의 선생에 대한 기본적인 싸가지 없음을 만드는 가장 주범인 그런 미친 늙은이들로 교무실은 갈수록 도둑놈 소굴처럼 변해갔다. 난 단안을 내렸다. 이 거지같은 것들과 함께 일하느니 내가 여기를 떠나자. 그래서 유임하라는 교장의 만류를 뿌리치고(그 속이야 뻔하지 않은가? 일에서의 열외를 권리처럼 주장하는 늙은이들로 학교가 가득 차니 일 시켜 먹을려고 붙잡는 거지), 구청을 옮기기로 했다. 학교를 옮기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강남이 내가 20년을 살아온 곳이라면, 송파구는 내가 그 나머지 인생을 살아온 곳이었으며, 대체로 그 문화나 분위기가 비슷했으니까(그러고 보면 나는 단지 두 개의 구에서 내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왔다. 우물 안 개구리란 속담은 나 들으라고 나온 말인가 보다). 그리고 인접해 있는 강동구 역시 대체로 비슷하거나 약간 못하리라 생각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송파구에서 10년 가까이 살았으면서도 바로 옆에 있는 강동구는 그때까지 거의 가 본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그때 문득 깨달았다. 검단산 갈 때 버스 창밖으로 구천면 길 일대의 풍경을 바라보거나, 기차표 끊으러 길동에 있는 강동 우체국에 몇 번 같던 것, 한일 시네마가 있는 천호 사거리, 시네월드 개관한 뒤 강동 구청 앞에 몇 번 갔던 것,&amp;nbsp;그 정도가&amp;nbsp;거의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서 막연하게 송파구건 강동구건 어쨌건 다 8학군인데 그만하면 할 만 하겠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착임계를 쥐고 암사동에 도착했을 때 그 느낌은…. 한국어의 빈약한 어휘로는 뭐라고 표현할 어휘의 부족을 느낄 정도였다. 영어로는 mental cataclysmic 뭐 이렇게 쓸까?&lt;br&gt;&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때의 내 심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정말 여러가지 생각으로 온통 엉켜 있었으니. ‘서울에 이런 곳도 있었나? 과연 내가 이런 곳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이 걱정은 자신은 쥐뿔도 없으면서 자신이 근무하던 곳의 학생들과 눈높이만 비슷해져 가지고 “내가 오륜에 있을 때는, 내가 가원에 있을 때는…. 하는 그런 선생들이 하는 종류의 걱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실존적인 혼란과 걱정이었다. 나 자신을 알기에 당연히 해야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반면에 ‘그래. 이런 곳이 당연히 있지. 난 대학교 때 이곳보다 더 어려운 사당동이나 봉천동의 달동네에서 소위 민중운동이란 것을 했던 사람이 아닌가? 어쩌면 이런 곳에서야말로 진짜 교사의 역할이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지.’ 하는 기대감 같은 것도 은근히 가슴속에서 솟아 나왔다. 물론 그 기대감이 고통으로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은 석 달이면 충분했지만 말이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amp;nbsp; &lt;o:p&gt;&lt;/o:p&gt;&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어떤 교사는 아이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아니, 대부분의 교사가 그럴 것이다. 흔히 하는 “내가 저들 비위까지 맞춰줘야 해?” 하는 푸념을 수없이 들어왔고, 그 푸념에 관해서만큼은 20대에서 50대 까지 (60대는 곧 짤릴거니까 빼자)세대차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암사동에서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엉뚱하게도 도대체 비위를 맞출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강남이나 다른 비교적 부유한 동네에서 주눅들어가며 아이들의 거만하고 차가운 시선만을 주로 받아왔다고 느끼던 저 위축되고 컴플렉스로 가득한 교사들에게는 교사에게 순종적이고 학부모도 찍 소리 안하는 암사동의 아이들이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웠을지 모른다.&amp;nbsp;&lt;br&gt;&lt;br&gt;그러나 나는 강남에서도 이미 아이들의 신뢰와 사랑을 가득 받아가며 5년을 보냈었다. 게다가 그것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 위해서 수도 없이 아이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난 기꺼이 아이들의 비위를 맞추었고, 또한 그러면서 아이들을 내 페이스에 끌어들이고, 그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로부터 다른 교사들이 받지 못하는 차별대우와 편애를 받아 왔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게 없었다. 모든 선생이 같았다. 선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곳이었다. 선생들 입장에선 얼마나 행복한가? 사랑도 거저 얻고, 귀여운 아이들도 거저 얻으니.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견딜 수 없는 답답함이었다. 나는 선생으로서 할 일이 거의 없어졌다. 다른 사람에겐 없는 뭔가가 저 사람에게는 있다라는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아이들을 휘어잡고, 수많은 복제품을 만들어 내고, 많은 인재를 키워왔던 나의 할 일은 일거에 사라져 버렸다. 그저 교사 자격증과 나라에서 주는 월급 명세서만으로도 아이들에게서 공경받고, 어깨 으쓱할수 있고, 인사 잘 받고, 뭐 이러는데, 뭐가 아쉬워서 거기에 다른걸 보태나?&lt;br&gt;&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나는 확실히 게을러졌다. ‘음. 내일 수업 땐 무슨 이야기를 할까? 다음 시험 때는 어떤 기상천외 황당한 문제로 모두를 놀래킬까?’ 이런 행복한 고민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나태, 권태로움. 이것은 나에게는 쥐약이다. 나는 전력질주를 사랑한다. 나는 탈진되는 것을 즐긴다. 이곳은 너무 재미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이곳 아이들의 생각 속으로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나와 그들 사이에는 너무도 작은 공통분모만이 존재했다. 사람이고, 한국말 쓰고, 같은 교실을 사용하고, 나는 말하고 그들은 받아 적고. 물론 잘 따르고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가 내가 아니라 그 어떤 선생이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구 아무개와 김 아무개 앞에서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기가 찬다. 도곡에선 모르는 척 지나가다 뒤통수에 펔큐나 안하면 다행이다. 도대체 자기들을 개 돼지 취급하는 사람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단지 선생이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면, 이건 스스로 개 돼지 취급을 자청하는 일이 아닌가?&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난 그런 아이들이 정말 싫었다. 그런 순진한 아이들이 정말 싫었다. 조금 더 영악해 지고, 세상을 똑바로 알고, 그럼으로써 이 어려운 삶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난 선생들은 두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한 종류는 이런 가난한 아이들을 경멸하는 부류였고, 또 다른 부류는 이런 아이들의 순진함, 혹은 어리석음을 ‘순수’라고 이름 붙여주며, 계속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부류였다. 아이들이 계속 이렇게 소위 ‘순수’하게 자라면 그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기나 했을까?&amp;nbsp; 나는 어떤 사람의 교육정도, 집안 수준 등을 쉽게 알아맞추는 편이다. 그런데 이 동네 아이들을 경멸하고 무시하는&amp;nbsp;교사들 중에는 마치 엄청 상류층인 것처럼 행세하고 아이들 앞에서 그것을 뽐내는 가소로운 사람도 있었다. 이곳 아이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거의 인종 차별 수준의 발언을 무수히 뱉아 대면서 말이다. 내가 견적을 어떻게 내냐고? 난 그 사람의 옷, 차 같은 것은 보지 않는다. 그 사람의 눈과 이마를 본다. 눈에는 그 사람의 정신세계가 훤히 디스플레이 되고 있으며, 이마는 그 사람 개인의 역사책이 적혀있다. 이런 나의 견적은 거의 틀림이 없다. &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마치 가난한 사람의 대변자인 것처럼 입만 열면 싸가지 없는 강남 아이들과 ‘순수’한 이곳 아이들을 비교하며, 마치 자신만이 이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으며, 자신은 이 아이들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정작 이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게 가만히 보면, 쓸데없는 수다나 떨며 놀거나, 무자비하게 구타하거나,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도 실패해서 수업을 중단하고 짜증을 내는 일 따위다. 결국 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 아이들 중에 자기와 비위가 맡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밖에 안 되는데,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 큰소리인가? 그런데도 나는 그런 큰소리를 들으면 기가 죽는다. 내 속에서부터 완벽하게 다듬지 않으면 큰 소리 치지 못하는 내 성격상, 나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가 죽는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뭔가 배울 것을 찾는다. 그러나 정작 현실로 들어가면 오히려 내가 한 수 가르쳐야 할 판이다. 참 황당한 일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짜증을 내건 무릎을 멍이 들도록 두드려 패건 여전히 인사를 잘 한다. 뒤돌아 가는 사람을 불러서까지. 정말 인사를 위해 태어난 아이들 같다. 물론 나도 인사를 많이 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 인사가 하나도 반갑지 않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래도 올해는 작년보다는 좀 적응이 된 것 같다. 아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작년보다는 좀 원활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아이들의 미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내 자식들이 아닌데도 난 내가 이 아이들의 앞길을 헤쳐주고 싶다. 뭔가 눈이 훤하게 뜨이는 그런 길을 열어주고 싶다. 그리고 가르쳐 주고 싶다. “자, 봐라! 저기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이렇게 말이다.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강남 애들이나 암사동 애들이나 마찬가지다. 강남 애들도 용돈이 좀 많다는 것 뿐, 기본적으로는 똑 같은 불행 속에 있으니까. 그 불행은 하필이면 하고 많은 나라들 중에서 한국에 태어났다는 원죄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묻지 않는다. 묻기라도 하면 함께 그 앞길의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이라도 할텐데. 제발 물어봐라 하고 부탁을 해도 묻지 않는다. 그저, 그냥 이대로가 좋다고 한다. 아니 차라리 그냥 이대로가 좋다고라도 말 했으면 좋겠다. 그것조차도 아니다. 한마디로 그냥 같이 시간이나 때우자고 한다. 특별한 말썽꾼이 아니면 특별한 말을 할 기회도 없다. 그럼 그들은 정말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말 그대로 ‘순수’ 한 것이고, 영원히 그렇게 ‘순수’하게 살려고 하는 것일까?&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학교가 끝나도 좀체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교복을 입은 체 학교에서, 학교 근처에서 배회하다가, 겨우 저녁 먹을 시간이나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 그 동기는 너무도 ‘불순’하다. 학교가 좋아서가 아니라 집이 싫은 것이다.&amp;nbsp;그들도 자기 집이 싫은 것이다. 자기들의 삶이 싫은 것이다. 그나마 학교가 더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amp;nbsp;뭘 어떻게 할수 있지? 내가 이런 고민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지? 안타까움만이 가득하게 아니 아찔하게 밀려온다. 그런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빠한테 휴대폰 사야 하니까 50만원만 내놔라 라고 했는데 아빠가 안 줘서 아빠랑 대판 싸웠다며, 아빠한테 미안하다며 흐느끼는 도곡 졸업생의 메시지가 내 삐삐를 뒤흔들며 녹음되어 있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나의 원죄. 이 이상한 생각이 나를 짓누른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이 아이들에게 내가 누렸던 그런 치기어린 장난조차도 다 누릴 수 있게 하고 싶다. 이 아이들이 안 되면 이 아이들의 아이들이라도. 쉽게 말해서 &quot;돈 많이 벌게 하고 싶다. 출세하게 하고 싶다. 남보란 듯이 에헴하고 살게 하고 싶다.&quot; 그러기 위해서 더 이상 ‘순수’하지 않게 만들고 싶다. 그놈의 ‘순수’파 선생들은 너희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을 희롱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싶다. 뻔하지 않은가? 그 선생들 자신 이미 ‘순수’하지 않은 웬만큼 넉넉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 안락한 삶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자신들의 자녀가 과연 그렇게 ‘순수’하게 자라게 하고 싶은가?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은 ‘순수’하지 않게 자라서 출세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의 아이들은 ‘순수’하게 자라서 자신들의 아이의 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다. 헌법상으로는 평등하지만 분명히 노예가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용하여. 정말 무섭고 나쁜 건 이런 사람들이다. 무시하는 사람들이 차라리 낳다. 적어도 그들은 위선자들은 아니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적이라는 것을 공개하니까. 하지만 이 순수파는 위험하다. 적이 적이 아닌척 하고 있으니, 아니 벗인척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이 ‘순수’파들도 위선자는 아니다. 자신이 위선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위선자들이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하고 한날 자기 집 가난하다며 강남 애들에 대해서 이를 박박 갈며, 소녀가장(?)으로서의 고통을 늘 투덜거리던 어느 여선생은 난데없이 대학원 입학고사를 준비한다. 그것도 등록금 비싸기로 악명높은 곳을. 도대체 이해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 이게 선생들의 본모습이다. 다 그런 것이란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괜히 건방 떨며 ‘순수’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못하는 것이다. 난 순수니 가난이니 하는 말을 못하겠다. 나는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래. 난 강남 촌놈이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냐? 난 강남 촌놈으로서의 나 자신을 인정한다. 그래서 진지하게 나와 다르게 살아온 아이들과 접근을 시도한다. 내 마음은 사실 이렇다. “솔직히, 미안하지만 나는 너희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불가항력이야.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겠단다. 너희들이 나를 좀 도와주렴. 그래서 우리 서로 거리를 좁혀 나가자.”이렇게 말이다. 난 감히 처음부터 신뢰, 사랑, 순수 따위를 입에 담을 용기가 없다. 그러나 분명 진보는 있다. 나는 분명히 작년보다는 아이들과 더 가까워 졌다. 그래서 이제는 그 ‘순수’파들을 압도하고 아이들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안타까운 것은 함께 헤쳐 나갈 그 길을 나도 찾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lt;br&gt;&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하지만 여기 부임한 지 1년, 이제 분명한 것은&amp;nbsp;나도 슬금슬금 사랑을 말할 수가 있게 되어 간다는 것이다. 작년보다 더 많이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에 말이다. 도곡의 아이들과는 금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어쨌건 간에 요즘에 들어서야 나는 교실에서 사랑을 말한다. 요즘에 들어서야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이 아이들을 한해 더 가르친다면,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사랑 받기도 하면서.&amp;nbsp; 마찬가지로 나는 아이들의 사랑을 느낀다. 그렇다. 분명 아이들은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슬금슬금 차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 원래 사랑이란 차별대우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의 가슴은 아이들이 던져주는 사랑을 받아먹고 점점 부풀어 오른다. 작년에는 이걸 얻지 못해서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아마 내년에는 나는 도곡에 있었던 시절만큼 행복해 질 것이다. 2년간의 적응기간을 거치고 마침내 말이다. 나는 이런 내 자신을 인정한다. 이제 이런 내 자신이 부끄럽지 않다. 그놈의 원죄의식도 이제는 던져 버릴 수 있을 것 같다.&lt;/span&gt;&lt;/p&gt;&lt;p class=&quot;바탕글&quot;&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0%&quot;&gt;그러나 사랑이 커 갈수록 안타까움도 더욱 커간다. 이제 아이들도 슬슬 나에게서 그 무엇인가를 바라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제야 내가 아무렇게나 인사하던, 단지 우리학교 선생들 중의 하나가 아님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른 선생들한테는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를 바란다. 자신들에게 꿈과 희망과 그 길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걸 모른다. 나는 아이들의 입장에 서서 미래를 바라본다. 계속해서. 그러나 모르겠다. 아아!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안타까움은 그냥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사랑은 사랑으로 남는다. 그래서 요즘에는 공부에 도통 관심 없는 아이들이 난리 법썩을 떨거나 1/3은 엎어져 자는 통에 그냥 콩가루가 되어버린 망친수업이 끝날 무렵이 되면 눈물이 난다. 7반이던가 어디선가 그 눈물 맺힘을 들키고 말았다. 아! 그래서 오늘 6반애들이 평소와 달리 그렇게 점잖게 있었구나! &lt;br&gt;&lt;br&gt;하지만 그렇게 조용히 안해도 되는데, 아무리 떠들어도 괜찮은데.... 이젠 아이들 입에서 “선생님 만한 분 다시없어요.”란 말을 듣고야 말았기에. 일단 이게 되었으면, 반은 된 거니까. 꼭 중학교 다닐 때가 아니더라도 좋다. 이놈들이 늙어 죽을 때 까지. 아니 내가 그렇게 오래 살까? 시간은 얼마나 걸려도 좋다. 난 기어코 길을 찾고야 말 것이다. 내가 세상을 뒤집어엎는 혁명의 괴수가 되어야 한다면 까짓 거 그것도 할 것이다. 그래서 감방 속에 처박히더라도, 난 그렇게 할 것이다. 난 결코 ‘순수’ 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사랑은 알고 있으니까.&lt;/span&gt;&lt;/p&gt;&lt;br&gt;&lt;a href=&quot;http://garden.egloos.com/10001614&quot;&gt;이글루스 가든 - 자유로운 아이들, 아름다운 교육을...&lt;/a&gt;</description>
<category />
<category> 교단일기</category>
<category> 사랑</category>
<category> 강남</category>
<category> 참교육</category>
<category> 교사의사랑</category>
<category> 학생</category>
<category> 어려운아이들</category>
<author>부정변증법</author>
<guid>http://hagi87.egloos.com/1053867</guid>
<pubDate>Fri, 21 Nov 2008 10:42:00 +0900</pubDate>
<source url="http://hagi87.egloos.com" ><![CDATA[ 부정변증법이 찾는 행복한 교육! ]]></source>
</item>
<item>
<title>익숙해지면 패닉도 사라지나?-미국 7500, 한국 940</title>
<link>http://blog.daum.net/leesc314/5522333</link>
<description>어제는 새로운 기록의 날이었다. 한국 증시가 948선으로 내려앉았다는 것. 그리고 오늘도 그렇다. 미 증시가 7500으로 내려 앉았다. 현물투자 짐 로저스는 8000을 바닥이라 했다가 다시 수정했다고 한다. 더 밑으로 내려간다고. 그의 예측이 맞았다. 한국의 김영익은 ......</description>
<category />
<author>사띠현정</author>
<guid>http://blog.daum.net/leesc314/5522333</guid>
<pubDate>Fri, 21 Nov 2008 08:45:19 +0900</pubDate>
<source url="http://blog.daum.net/leesc314" ><![CDATA[ 생태와 경제 ]]></source>
</item>
<item>
<title>지하세계, 부천 지하철 7호선 공사현장 견학</title>
<link>http://newidea.egloos.com/1147948</link>
<description>오늘은 올해들어 첫눈을 본,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현장은 쉬질 않죠. 오늘 견학간 곳은 부천시의 지하철7호선 연장구간입니다. 2004년 12월부터 시작된 이 공사는 중간에 예산부족으로 중단되기도 했었던 공사현장입니다. 처음 2010년 완공.... &lt;a href=&quot;http://newidea.egloos.com/1147948&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x;&quot;&gt;글 전체보기&lt;/font&gt;&lt;/a&gt;</description>
<category />
<category> 부천지하철</category>
<category> 7호선</category>
<category> 지하철공사</category>
<category> 공사현장</category>
<author>착선</author>
<guid>http://newidea.egloos.com/1147948</guid>
<pubDate>Thu, 20 Nov 2008 22:07:04 +0900</pubDate>
<source url="http://newidea.egloos.com" ><![CDATA[ 착선의 변증법 ]]></source>
</item>
<item>
<title>운명의 책</title>
<link>http://kixzero.egloos.com/3986842</link>
<description>&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수학자 J는 항상 나에게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물론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MSN 창을 끄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까닭은, 한밤중에 잠이 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J가 얼마나 수학을 좋아하는지 생생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향한 순수한 열정은 느낌만으로도 좋다. 다른 사람들도 그 순수함에 물들게(?) 만들 거 같은 기분을 준달까. 아, 물론&amp;nbsp;J의 일상적 생활과는 별 개의 이야기.&lt;br&gt;&lt;br&gt;그 날도 J는 수학에 관해서 얘기했다. 중 3때 만난 그를 수학으로 이끈 '운명의 책'에 대해서였다. 역시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참 한 J는 나에게 되물어본다. &quot;은하씨도 이런 운명의 책이 있어요?&quot; 어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인데. 불현듯 나도 궁금해진다. J만큼이나 순수한 열정을 불어넣을 운명의 책. 나에게도 있었나? &lt;br&gt;&lt;br&gt;있다. 때로는 손에 잡자마자 번쩍 하고 영혼을 때리던 책도 있었고, 때로는 여러번 읽은 끝에 시나브로 마음 속에 무언가 자리잡게끔 만든 것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책과 조우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대화를 재생해본다.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응?)&amp;nbsp;자꾸자꾸 거슬러올라다보니 나의 원점이 거기 있었다. 몇 권만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lt;/span&gt;&lt;br&gt;&lt;br&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Batang'&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003300&quot;&gt;운명의 책 영예의 1위! : &amp;lt;세계사신문&amp;gt;/ 사계절 (1999년)&lt;br&gt;&lt;br&gt;&lt;/span&gt;&lt;/strong&gt;J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amp;lt;세계사신문&amp;gt; 시리즈이다. 이전에&amp;nbsp; &amp;lt;역사신문&amp;gt; 시리즈도 재미있게 읽었던 바, &amp;lt;세계사 신문 &amp;gt; 시리즈도 나오자마자 단번에 구입했다. &amp;lt;역사신문&amp;gt;이 완간되었던 때가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그리고 &amp;lt;세계사 신문&amp;gt;의 경우는 중학교 2학년 때이다. 한 가지 추억이 더 있다면, 바뀐 출판문화와 대형서점/온라인서점 등에 밀리고 치인 끝에 이미 내가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문제집 가게가 되어버렸던, 학교 앞 조그마한 서점, 이른 바 '동네서점'에서 산 마지막 책이기도 했다.&lt;br&gt;&lt;br&gt;&amp;lt;역사/세계사 신문&amp;gt; 시리즈는 참신한 형식에 출간당시부터 워낙 호평이 자자했다. 확실히 놀라운 것은 &amp;lt;세계사 신문&amp;gt; 이 책은 거의 10년이 지나고,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 읽어보아도 새롭고 흥미로운 내용들을 계속 발견하게 된다는&amp;nbsp;것이다.&lt;span style=&quot;COLOR: #666666&quot;&gt;&lt;/span&gt;신문 형식인 만큼, 한 번에 꼭 다 읽지 못하고 '놓치는' 기사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당시는&amp;nbsp;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시도들이 신문 곳곳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목세계에 대한 조명, 세계체제론, 서구중심주의와 이에 대한 반동으로 벌어진 막연한 '동양적 판타지' 사이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 하나같이 깊고 무거운 주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쉽고 재미있었으니, 저자들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할 만 하다.&lt;br&gt;&lt;br&gt;신문 형식의 역사서가 주는 가장 큰 강점은 생생한 현장감이다. 마치 오늘의 신문을 읽는 것처럼, 과거의 사실이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당대인들의 시대정신의 맥락 속에서 펄떡펄떡 살아서 내게로 왔고, 나는 그 생동감이 좋았다. &lt;span style=&quot;COLOR: #cc0000&quot;&gt;&quot;모든 역사는 당대에 있어 '오늘의 고민'이었다&quot;&lt;/span&gt;. &amp;lt;세계사신문&amp;gt;을&amp;nbsp;통해 본 역사는 그러했다. 자연스레 어느덧 이 시대의 고민들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amp;nbsp;없게 되었고,&amp;nbsp;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대학에 가서 역사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 때부터였으니, 가히 운명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amp;nbsp;나의 변할 수 없는 원초적 사관을&amp;nbsp;부여해 주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나라는 인간의 원점이랄까.&lt;br&gt;&lt;br&gt;그러고보니 세계사'신문'이라니. 이래저래 운명을 못 비껴가는 책인듯 하다.-.-;;&lt;br&gt;&lt;br&gt;* 유사한 종류 &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003300&quot;&gt;&amp;lt;먼나라 이웃나라&lt;/span&gt;&amp;gt;/ 이원복 (초등학교 4학년)&amp;nbsp;-&amp;nbsp; 나에게 있어 유럽문화 및 역사에 관한 입문서. 나의 복지국가와 혁명을 향한 열망이 생기도록 제대로 불붙여 주셨더랬다. 얄궂게도 이원복 아저씨는 그래놓고 지금은 새파란 만화를 그리시긴 하지만 말이다.&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003300&quot;&gt;&amp;lt;거꾸로 읽는 세계사&amp;gt;/&lt;/span&gt;유시민 (고등학교 1학년) - 고등학교 1학년 때 읽기에 매우 적절했던 책이었다. 끓는 피로 읽어야 제 맛인 책. 또한 그러하게 만드는 책. 대장정-4.19-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3부작(?)은 바로 그 열혈감성의 정점을 찍어준다. 지금 보면 낯간지러워서 조용히 웃지만,&amp;nbsp;스피디하게 읽어내리기에는 여전히&amp;nbsp;재미있다.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여기에서 출발했다. 생각해보니 김원태&amp;nbsp;선생님 추천도서였네.&lt;br&gt;&lt;br&gt;&lt;strong&gt;&lt;span style=&quot;COLOR: #003300&quot;&gt;대학와서 읽은 것 중에는? &amp;lt;아리랑&amp;gt; 님 웨일즈/김산 (2008년)&lt;/span&gt;&lt;/strong&gt;&lt;br&gt;&lt;br&gt;&amp;lt;아리랑&amp;gt;은 고등학교 때 읽었어야 했다. 아니면 최소 대학교 1,2학년. 대학교 5학년이 되어서 읽으니, 여전히 가슴벅차기는 한데, 확실히 청소년기 때 읽었다면, 온 영혼을 사르면서 보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온 이후 가장 나에게 영향력을 미친 책이라고 꼽는 까닭은 이 책이&amp;nbsp;내&amp;nbsp;20대&amp;nbsp;한 단락의 마침표였기 때문이다. &lt;br&gt;&lt;br&gt;혁명가의 이야기는 어지간해서는 정말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amp;lt;아리랑&amp;gt;에는 무용담을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강한 경외를 품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 제 1차 국공합작이 깨지고, 김산의 중국공산당 동지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나중에 구사일생 끝에 다시 만난 동지들은 각자의 탈출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 중 가장 극적인 것이 벙어리 거지 행세로 간신히 살아도망쳐나온 어느 소년의 사연. 그 역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잡혀서 수감되어 사형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수감 동료가 그에게 속삭인다. 자신들과 달리 그 소년의 결박이 느슨하니 얼른 결박을 풀어서 창을 통해 탈출하라는 것이다. 죽음을 문턱에 두고, 혼자 살아 탈출하는 이 소년을 질투할 법도 하건만, 감방의 수형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의 탈출을 기원하고, 그가 벽을 기어올라 창문을 빠져나갔을 때 자신의 생을 맡기는 것 마냥 진심으로 환호해 주었던 것이다. 그들을 뒤로 하고 눈물의 탈주를 했을 소년을 생각하면, 그 와중에 소년을 응원하던 동지들을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뭉클해진다. 흔히 인간 본성에 관한 현실주의적 접근은 주로, 인간에 대해 시니컬함 태도를 보이기는 하지만, 가끔 이렇게 극한의 상황에서 극한의 인간미가 나오는 모습들이 이 모든 시니컬함을 뒤엎을 때가 있다.&lt;br&gt;&lt;br&gt;2008년 여름, &amp;lt;아리랑&amp;gt;을 읽으면서 새삼 내가 왜 동아시아 근대사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다시 확인했다. 폭력이 만연한 시대에, 평화로운 삶을 위해, 비극적 삶을 걸었던 인생들이 영혼을 강렬하게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나는 승자의 찬가가 아니라, 시대의 모순을 온 몸으로 고발하고 떠난 패자들 덕에, 억압과 폭력에&amp;nbsp;대한&amp;nbsp;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나에게 그들은 결코 패자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20세기 동아시아 역사는 나에게 억압과 폭력에 대한 저항적 감수성의 원천이라고나 할까.&lt;br&gt;&lt;br&gt;그래서 시작이 중2때 &amp;lt;세계사 신문&amp;gt;이었다면 마무리는 대학교 5학년때의 &amp;lt;아리랑&amp;gt;이다. 난 이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다음 단락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그토록 좋아하던 역사학이 한동안 다소 환멸의 대상이 되었고, 그런 자신에 대한 회의로 영혼을 갉아먹었던 날들을 청산한 마침표다. 대학원에 가지 않아도, 자신의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것을 평생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amp;nbsp;이 책 덕분일 것이다.&lt;br&gt;&lt;br&gt;사실 가장 재미있었던 대목은 연애에 관한 김산과 김충창의 논쟁. 혁명가들도 다 똑같아, 다 똑같아. 상황에 따라, 커플을 갈굴 때 혹은 솔로를 놀릴 때 모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역시 아는 것이 힘. &lt;br&gt;&lt;br&gt;나머지는 운명의 책 까지는 아니지만 영향력을 많이 미쳤던 책들.&lt;br&gt;&lt;br&gt;&lt;strong&gt;문학 중에는&lt;/strong&gt;&lt;br&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Batang'&quot;&gt;&lt;strong&gt;&amp;lt;운명의 딸&amp;gt;/이사벨 아옌데, 권미선 옮김(2003) , &lt;br&gt;&amp;lt;천개의 찬란한 태양&amp;gt;/할레드 호세이니, 왕은철 옮김 (2008)&lt;/strong&gt;&lt;br&gt;&lt;br&gt;뭐니뭐니해도 책은 중고등학교 때 많이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요즘 새삼 느끼곤 한다. 언제 읽어도 책은 좋기는 하지만, 나이 들어서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자기 고집이란 게 생겨서, 어지간해서는 영혼이 움직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무진장 후회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중고등학교 때 의도적으로 문학을 멀리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감정을 배제한 논리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서. 참 시덥잖은 이유같지만 그 때는 나름 심각했다. 그래서 문학은 안 읽고 역사만 주구장창 읽었더니, 결국 문장력만 증발해 버렸다.-_- 그렇다고 이성적인 인간이냐. 그런것도 아니고, 감정적이긴 감정적인데 그걸 부드럽게, 현명하게 못 풀어내는 인간이 되었다고나 할까. 혹시 나 같은 망상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얼른 생각 접으시길 흑흑흑.&lt;br&gt;&lt;br&gt;그런 청소년기였음에도 시절 가슴에 완전히 박혀들어왔던 문학작품이 있엇으니, 이사벨 아옌데의 &amp;lt;운명의 딸&amp;gt;이다. 칠레의 인디오 혼혈 소녀가 자신의 삶을 찾아, 골드러시 시기 미국으로 떠나고 그 곳에서 온갖 인간군상을 만나면서 모험을 겪고 성장해 나가는 내용으로. 모험소설의 흥미진진함과 성장소설의 깊이를 동시 갖춘 수작이다. 또한&amp;nbsp;여성으로서 삶을 개척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 역시,&amp;nbsp;나 또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진지하게 공명할 수 있는 부문이었다.&lt;br&gt;&lt;br&gt;최근 아주 오랫만에 소설책 읽다가 밤을 샜는데, 다름 아닌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을 다룬 &amp;lt;천 개의 찬란한 태양&amp;gt;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 따로 서평을 쓰겠지만,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참 사람 취향 변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보다 극한적 환경이 자아내는 감동은 &amp;lt;천 개...&amp;gt; 쪽이 다소 더 강렬하다만, 어쨌거나 공통점은 세계와 대면하는 여성의 삶. 그리고 그들은 어쨌거나 열심히 살아갔습니다로 끝나는&amp;nbsp;해피엔딩. 가장 중요한 건 어쨌든 주인공들의 연애가 행복하게 결말이 났다는 거. 그래그래, 바로 연애가 중요해.&lt;br&gt;&lt;br&gt;* 초등학생때는&lt;br&gt;&amp;lt;작은아씨들&amp;gt;: 아마 책 좋아하는 여자애들이라면 다 한 번 이상 읽었을 법한 책. 독서소녀들은 또한 자신을 조 마치에 이입시켜, 에이미를 미워하는 경향이 있는데.....나도 그랬다. OTL&lt;br&gt;&amp;lt;빨간머리 앤&amp;gt;: 의외로 여자애들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그러고보면 문학, 특히 소설이란 역시나 삶의 모델로서의 세계인 것인가.&lt;br&gt;&amp;lt;사랑의 학교&amp;gt;: 공화주의적 애국주의 감성에 심하게 반응했다고 믿고 있다;;;&lt;br&gt;&lt;br&gt;&lt;strong&gt;학술서: &amp;lt;농민의 도덕경제&amp;gt;/제임스 스콧, 김춘동 옮김&amp;nbsp;(2006)&lt;/strong&gt;&lt;br&gt;&lt;br&gt;관심이 정치사에서 문화사로, 다시 문화사에서 경제사로 옮겨가던 중에 발견한 책.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막연한 찬양 혹은 어쩔 수 없다는 대세론 사이에서 빛나던 주옥같은 책. 극단의 시대 읽기 모임에서도 추천받았다. 꼼꼼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신선한 관점과, 약자들에 대한 애정도 물씬 묻어나서, 학술서적을 쓴다면 이렇게 써야한다고 마음 속 이상적 모델로 자리잡은 책이다.&lt;br&gt;&lt;br&gt;그렇지만 정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이 한 구절. 근데 인용문이었어 -0-&lt;br&gt;&lt;br&gt;&lt;span style=&quot;COLOR: #333399&quot;&gt;급진주의의 중요한 사회적 토대는 농민들과 읍내의 영세 장인들이 만들어 왔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혹자는&lt;strong&gt; 인간 자유의 원천&lt;/strong&gt;은 마르크스가 본 것처럼 권력을 막 획득하려는 계급의 열망뿐만 아니라 &lt;strong&gt;진보의 물결이 막 굽이치려고 하는 사이에 사멸하고 있는 한 계급의 통곡 속에 어쩌면 더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lt;/strong&gt; (Moore, The Social Origins of Dictatiorship and Democracy)&lt;/span&gt;&lt;br&gt;&lt;br&gt;&lt;br&gt;* 유사 *&lt;br&gt;&amp;lt;한국노동계급의 형성&amp;gt;/구해근, 신광영 옮김 (2005) :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 책이랄까. 한국노동사에 생경했던만큼 인상깊었던 책. 문제는 이 책이나, &amp;lt;농민의 도덕경제&amp;gt;나 모두 E.P. 톰슨의 관념을 빌려서 쓰고 있는데, 정작 톰슨의 책은 안 읽었으니 과연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의문...;;&lt;br&gt;&lt;br&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Batang'&quot;&gt;&lt;strong&gt;교양 사회과학서적 : &lt;br&gt;&amp;lt;쾌도난마 한국경제&amp;gt; 장하준-정승일 대담/이종태 엮음 (2005)&lt;br&gt;&amp;lt;아파트 공화국&amp;gt; 발레리 줄레조/길혜연 옮김&amp;nbsp;(2007)&lt;br&gt;&amp;lt;굶주리는 세계&amp;gt; 프란시스 무어 라페/허남혁 옮김&amp;nbsp;(2004)&lt;/strong&gt;&lt;br&gt;&lt;br&gt;이 시대에도 위험한 서적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장하준의 서적 중 &amp;lt;나쁜 사마리아인들&amp;gt;이 아니라 &amp;lt;쾌도난마 한국경제&amp;gt;를 먼저 올려놓은 까닭은 꽤나 얄팍하다. &amp;lt;나쁜 사마리아인들&amp;gt;은 불온서적 파문이 일어난 후 읽었던 것이고, &amp;lt;쾌도난마 한국경제&amp;gt;는 책이 출간되자마자 관심을 갖고 내가 사 본 책이라는 얄랑한 자존심. 으으 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 ㅠㅠ (이 소인배녀석!) 그렇지만 최근 들어 눈여겨 보는 점은, 장하준, 정승일의 지식과 관점도 중요하지만, 사회를 본 이종태의 이슈제기능력! 저널리스트로서의 역할모델로서 염두에 두고 있다.&lt;br&gt;&lt;br&gt;&amp;lt;아파트 공화국&amp;gt;은 그야말로 사람냄새 나는 사회과학. 한국의 아파트라는 미시적 현상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개발독재, 건설자본주의, 도시문화, 통제 등의 현상을 줄줄이 꿰뚫은 책. 한편으로 사회과학을 쓴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는 이상형을 제시했달까. 덕분에 발레리 줄레조의 팬이 되어 이 분이 차기작으로 연구한다는 한국의 '방'(찜질방, 노래방, PC방) 문화도 기대중이다.&lt;br&gt;&lt;br&gt;&amp;lt;굶주리는 세계&amp;gt;는 수능 끝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애매한 시절 읽었던 책. 농업, 세계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해 준 책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니 대학다니면서 특히 관심많았던 문제들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던 듯. 한국의 사례가 아니라서 공감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amp;nbsp;대신에 시야를 확장시켜준 책이다. 한 권을 더 사서 고등학교 도서관에 한 권, 반방 도서관에 한 권 기증했는데, 반방에 기증한 건 행방이 묘연하다. &lt;br&gt;&lt;br&gt;생각해보니 환경에 대한 나의 원초적 감수성을 형성한 또 하나의 책은 다름 아닌 아~주 어릴 적 읽었던 &amp;lt;과학앨범&amp;gt;!!! 아니 읽었다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거의 말 그대로 '앨범'이라 슥슥 넘기면서 본 사진이 전부. 동물편과 식물편, 그리고 희한하게 광물편을 매우 좋아했었는데(특히 '청설모와 다람쥐'랑 '코끼리'를 매우 좋아했다;;)...자연에 대한&amp;nbsp;무조건적 애정과도 같은 감성이 심어졌달까. 자연과 접하기 어려운 도시 아이로서는 간접 경험이나마 좋은 계기였다는 생각도 든다.&lt;br&gt;&lt;/span&gt;&lt;br&gt;&lt;br&gt;J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허나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20대 중반으로 들어서려고 하는 무렵, 신산한 감정과 방황들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일이었다. 그러니 J가 MSN 물귀신질로 나의 숱한 밤들을 나락으로 빠뜨린 것은 눈감아주기로 하자. 물론 농담이고, 매우 깊이 감사한다. J의 막장 폐인 생활과는 별개로.&lt;br&gt;&lt;br&gt;때로는 이처럼 무심코 던진 질문이 다른 사람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언가에 미치는 순수한 열정을 그래서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질문. 그건 자기 존재에 매우 충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이어받아 집어던진 이 질문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고민에 대해 좋은 답이 되었으면 좋겠다.&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quot;&gt;당신도 나처럼, 운명의 책이 있나요?&lt;/span&gt;</description>
<category />
<author>은하</author>
<guid>http://kixzero.egloos.com/3986842</guid>
<pubDate>Thu, 20 Nov 2008 15:51:33 +0900</pubDate>
<source url="http://kixzero.egloos.com" ><![CDATA[ 꺾이지 않는 펜 ]]></sourc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