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교육학 강의 발제(2)

교육철학 세미나 2008년 09월 21일 20시 56분   by amadeus
<본론>


이제 본론이다. 그런데 서론에서 이미 개요를 다 이야기 했기 때문에 정작 본론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칸트는 나름 교육의 각 단계, 즉 양육, 훈육, 지식교수, 도덕교육에 해당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좀 시대에 맞지 않고, 때로는 이 책의 품위(?)와도 맞지 않는다. 특히 양육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그러나 그렇게 구체적인 부분들(이를테면 아기에게 무엇을 먹이고, 옷은 어떻게 입히고 등등)까지 세심하게 연구하고, 그 바탕 위에 교육학을 세우려 한 칸트의 자세를 배우자면 배워야 할 것이다.

본론에서 칸트는 교육과 교육이론이 자연적일수도 있고, 실천적일수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자연적인 교육은 인간이 동물과 공유한 것과 관계하고, 실천적인 부분이 바로 인간이 인격적 존재가 될수 있는 교육이다.

칸트는 지난 발제에도 나왔듯이 이 실천적 교육을 다시 세 단계로 나눈다.

1) 문화화 하는 교육(지식교육): 시민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또 여기에 영향력을 끼치고 이용할 수 있는 여러가지 능력을 계발하고, 여기에 숙달, 숙련되게 함. 다소 기계적인 방식으로 수행되며 주요 무대는 학교. 실제 우리나라 학교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교육과정은 아직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2) 문명화 하는 교육(사회교육): 사회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 실용적인 능력, 분별력, 예절 등을 익혀서 자신을 공동체에 적응시킬수 있는 능력을 키움. 이것은 일종의 사교와 관련된, 그리고 각종 의례 등과 관련된 교육으로 시민사회가 주된 교육의 장소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종류의 교육은 어디에서도 하고 있지 않다. 칸트는 지식과 도덕의 중간단계로 이 문명화 교육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3)도덕교육: 학생들의 도덕성, 품성과 성격을 함양하여 인류공동체 속에서 제자리를 찾게 하는 교육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유로이 행위하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칸트는 이런 실천적 교육이 어린이의 발달단계에 맞도록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훈육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에 숙련이나 실용적 분별이 먼저 깨친 어린이는 교활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자연적교육으로서 양육과 훈육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데, 이는 건너 뛰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나서 실천적 교육의 구체적인 사례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첫단계가 여러 능력들을 기르고 키우는 교육인데, 그 중에서 특히 마음의 능력들, 정신의 능력들을 키우는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어떤 체계적인 학습이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데, 이는 그의 제자인 헤르바르트에 가서야 완성되는 부분이다. 다만 몇 가지 경구적인 충고들은 귀담아 들을만하다.

70절, 인간에게 가장 좋은 휴식은 일을 한 뒤 향유할 수 있는 휴식이다. 따라서 아이들을 일하는 것에 습관적으로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아동교육은 일정한 규제와 강제, 즉 외부로부터의 의무를 함축하고 있는 방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지만, 비열한 노예근성이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

71절, 아동의 마음의 능력은 마음의 높은 능력들을 주로 고려하여 키워야 한다. 즉 기지와 재기는 지성의 능력을 고려하여 길러야 한다. 어떤 한 능력만 따로 길러서는 안되며, 다른 마음 능력들과 관계지워서 키워야 한다.

칸트는 저차 능력으로 기억력, 기지, 재치, 상상력 등을 들고 있으며, 고차능력으로 지성(일반적 원리 인식하는 능력), 판단력(이를 개별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 이성(여러 일반적 원리들의 연결을 통찰하는 능력)을 들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기억, 단지 상상은 의미가 없다.

결국 칸트가 제안하는 교수방법은 지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의 능력들이 유기적으로 발휘되는 통합적인 교수다. 물론 이는 기계적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학생들이 지성의 규칙을 사용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즉 지성의 규칙은 그 사용과 그 습득이 같은 과정이라야 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칸트는 교육의 목적에 대한 체계적 개념화 뿐 아니라(이는 주로 서론에서 완결됨), 그 목적을 성취하는 방법에 대한 체계적 개념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본론이 이것을 다루고는 있으나 미진함).

우선 지식(마음의 능력 기르는 교육)교육에 대한 방법론은 통합교수로 귀결되었고, 칸트는 다음으로 도뎍교육의 방법론으로 이행한다. 여기서 그는 습관이 아니라 자기의 행위규칙에서 말미암아 선핸행위를 수행해야 한다는 그의 대표작인 "윤리형이상학의 정초"의 근본 원리를 재확인한다. 즉, 자기가 해야 할 행위의 정당한 이류를 알고, 이를 도덕적 의무 개념에서 추론, 정당화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선과 악의 행위 규칙에 따라 추론하여 행위할수 있을때 훈육과 구별되는 도덕교육이 성립되며, 이는 그의 앞서 도식에 따라 교육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그는 상벌에 의존하는 교육을 도덕교육을 훈육 수준으로 격하시킨다고 보아 거부한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어 버릇을 망쳐서도, 혹은 의도적으로 거절하여 노예근성을 배게 해서도 안된다. 그 바탕에서는 항상 일관된 원칙이 있어야 하며, 정당한 행위규칙의 정당성을 아동이 통찰할수 있도록 해야한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부모와 교사가 가장 조심해야 할 원칙이 도출되는데 그것은 바로 보편성이다. 부모와 교사는 자신의 경향성,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보편적 원리 아래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아동들을 대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칸트는 하나의 난제를 남겨 두는데, 이러한 도덕교육이 어릴때부터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훈육이 완료된 다음에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어릴때도 처벌, 상이 아니라 원리를 깨닫고 받아들이면서 운운하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아동의 복종은 청소년의 복종과 다른데, 청소년은 의무에서 비롯된 복종을 한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이는 루소의 잔영으로 보인다. 그래서 훈육기 아동의 처벌을 인위적인 강제, 무력으로 보지는 않는다. 자연적인 결과가 가장 훌륭한 처벌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도덕적인 경멸과 수치감이 발전된 처벌이 되며, 마지막으로 의무가 등장한다.

그 외에도 잡다할 정도로 많은 제안들이 있지만, 일일히 고려할만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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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amadeus 2008년 09월 21일 21시 24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7일부터 댓글과 트랙백(블로그 있으신 분들은 이걸 강추)으로 토론을 진행해 봅시다. 내용에 대한 질문이나 딴지도 좋고, 한국 교육과 관련한 문제의식도 좋습니다.

    그리고 10월 25일에는 뒤르켐의 "교육과 사회학"을 읽고 토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얇고 간결하며,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서 쉽게 읽을수 있습니다.

  2. BlogIcon khj4435 2008년 10월 06일 14시 18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달 단계 이야기가 나오면 늘 나오는 질문이 있죠. 개인차는 어쩌란 말이냐~!! 그리하여 수준별, 개별화 교육이야기가 나오죠. 솔직히 전 부진아들을 거의 무시하는 교사죠. 3시간 영어 단어를 외워도 30분이면 머리속이 비어지는 녀석들. 수업 중에 이 아이들을 배려해서 잘 참여시키고 따로 이들을 위한 수업자료를 만드는 거~ 전 쥐약입니다. 다들 책을 너무 안 읽고 공부를 안한다고 한탄합니다. 하지만 가끔 생각합니다. 꼭 이 망할 책밖엔 없는 거냐고. 고차 능력인 지식만이 살길이냐고.

    • BlogIcon amadeus 2008년 10월 07일 09시 58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인차의 범위가 어느정도 되는지, 과연 각 개인별로 모두 유의한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 오늘날 심리학의 결과는 아니라고 하고 있죠. 그것은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경험의 차이이며, 삶의 방식의 차이고, 그 차이는 마냥 강조될 것이 아니라 그속에서 공통의 것을 찾아가야 하는 소재인 것이죠.